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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65회 정기연주회 - 차이콥스키, 비창 (글_송현민)

  • 작성일2020-11-04
  • 조회수1110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65회 정기연주회 ‘차이콥스키, 비창’
편지와 첼로, 그리고 비창 
(2020. 10. 24. 토.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관객석의 변화만 가져오지 않았다. 공연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인원(단원)이 축소·한정되면서 선곡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대형 작품은 금물. 말러나 브루크너 등의 대작(大作)으로 기염을 토해내던 교향악단들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기본 편성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해외서 말러 교향곡을 선보이고 싶은 악단들은 교향곡 4번이나, 성악이 함께 하는 ‘대지의 노래’를 실내악으로 편곡한 버전을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가 공연 레퍼토리에 몰고온 작지 않은 변화다.

슈만, 브람스, 차이콥스키는 이런 와중에 교향악단이 택할 수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작품들이다. 이로 인해 올가을에는 슈만, 브람스, 차이콥스키의 주요작들이 많이 오른다.

지난 10월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 오른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부천필)의 제265회 정기연주회 제목은 ‘차이콥스키, 비창’이다.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중 가장 잘 알려진 교향곡 6번의 부제다. 코로나 시국에 택할 수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악곡이자,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선곡이다. 이에 앞서 마우리치오 카겔의 ‘아인 브리프’,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1번이 전반부를 꾸몄다.

현재 상임지휘자가 공석(空席)인 부천필의 객원지휘를 맡은 이는 서진이다. 2017년부터 과천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재직 중인 그는 첼로를 전공했고, 지휘를 공부했다. 과천시향 외에 크로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헬로우 샘 오케스트라 등의 사설 악단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부천필과의 조우는 2017년 이후 처음이다.

“2017년 해설음악회 시리즈의 하나를 맡았습니다. 엘가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베버의 ‘오베론’ 서곡,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그리고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선보였습니다.(서진)”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눈에 띈다. 실연으로 많이 접하기 힘든 곡이다. 서진은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하고 즐길 줄 아는 지휘자다. 이번 무대의 첫 문을 연 마우리치오 카겔의 ‘아인 브리프’도 그러하다.



◼ 그 편지에는 어떤 노래가 적혀 있었을까?

‘아인 브리프’는 서진이 선택한 곡이 아니라, 전임 지휘자가 선곡한 작품이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한국 초연’이라는 딱지가 붙었을 만큼 서진에게나 부천필에게나 낯선 곡임은 분명하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독일 쾰른에서 활동한 카겔(1931~2008). 유럽의 음악 전통에선 이방인이었던 그는 자유로웠다. 인간 자체에 내재된 자유로움과 현대음악의 파격의 역사는 잘 맞물렸을 것이다. ‘편지’라는 뜻의 ‘아인 브리프’에는 이러한 파격의 겹이 존재한다.

4대의 호른과 3대의 클라리넷이 관악진을 이루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는 한쪽으로 몰려 있지 않다. 독특하게 양쪽에 똑같이 두 악기가 날개처럼 배치돼 있다.

“‘아인 브리프’를 지휘해야 한다고 들었을 적에 거리감보다 호감이 먼저 들었습니다. 저는 현대음악을 할 때 뭔지 모를 ‘자유로움’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작곡가가 원하는 것을 지휘자로서 찾아내는 ‘탐구’도 흥미롭죠.”

협연자 추희명(메조 소프라노)은 환호와 인사를 받으며 등장하지 않는다. 실성한 여자처럼 지휘자 옆으로 서서히 걸어 나온다. 관객은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지휘자 옆에 놓인 의자에 가서 앉는다.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기악음악이 성악곡으로 변한다. 추희명은 처음에 편지를 읽는 듯한다. 그러다가 ‘아~’ ‘에~’와 같이 가사 없는 허밍을 부른다. 부천필은 강렬한 불협화음을 연주하다가도 메조 소프라노의 노래가 나오면 그 꼬리를 내리기도 한다. 중간마다 재즈적인 요소도 보인다. 조금씩 틔어 나오는 친근한 선율들이 현대음악 특유의 거리감을 없애기도 한다. 서진은 한국 초연의 성공을 추희명에게 돌렸다.

“메조 소프라노는 협연자이며, 동시에 편지를 읽으며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연출가입니다. 그녀가 이를 굉장히 잘 소화해냈어요. 사실 ‘음표’에만 매달리면 ‘극적 흐름’을 놓칠 수도 있는 작품이거든요.” 공연 후 그는 “현대음악의 초연보다 세상에 많은 현대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교감

생상스(1835~1921)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한 이정란의 연주는 우아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개인적으로 음악을 감상할 때에 몇 개의 선입견을 일부러 갖고 본다. 우리는 선입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추상예술의 대표 격인 음악은 선입견을 통해 뭔가 드라마를 입게 된다. 그때에 선입견은 일종의 ‘정보’이기도 하다.

생상스는 이정란의 분신 같은 작곡가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생상스는 파리의 음악가였다. 이정란은 파리국립음악원에서 수학했고, 파리에서 활동했다. 올해 내놓은 앨범 제목은 ‘랑데부 인 파리’이다. 생상스를 비롯해 드뷔시, 풀랑의 음악이 그 안에 담겨 있다. 프랑스의 에스프리(정신)는 그런 그녀의 시그니처와도 같다. 나는 이러한 정보들을 합산하고 선입견 삼아 그녀의 연주를 듣곤 한다.

서진을 바라보는 선입견은 첼리스트 출신이라는 점이다. 지휘자도 인간이다. 자신의 고향을 저버릴 수는 없다. 팔도 안으로 굽는다. 따라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다진 악기에게 많은 호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악기가 가는 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그나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시작과 동시에 협연자에게 숨 고를 틈도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주제를 연주한다. 아니, 주제선율로 오케스트라와 충돌하며 “협연자인 내가 지금 여기 있노라”라고 외치는 스타일이다.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도 마찬가지다. 곧바로 음악적 테제를 관객에게 날린다. 이후 가파르고 기교적인 흐름이 진행된다. 긴장의 순간이 여러 곳에 서려 있다. 이러한 점들이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을 ‘충돌의 음악’으로 이해하게 한다.

하지만 이날 무대에서 첼로를 아는 지휘자는 첼로가 걸을 길을 순조롭게 낸다. 첼리스트는 첼로를 다룰 줄 아는 지휘자가 낸 길을 우아하게 걷는다.

열연이 끝난 후 이정란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를 앙코르로 선보였다. 여덟 명의 단원과 함께 한 작은 실내악이었다. ‘생상스=백조’라는 대중의 내심을 읽은 서비스였다. 그 마음이 고맙다. 공연 후 서진은 “오케스트라의 협주곡과 교향곡 사이에 작은 실내악이 놓인 듯한 순간이었다”라며, 그 역시 그 앙코르의 순간을 고마워했다.



◼ 4개의 악장 속 수십 개의 표정 꺼내기

결론부터 말하면 차이콥스키(1840~1893)의 교향곡 6번은 네 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서진의 해석과 지휘는 이 곡을 십수 개의 악장으로 나눈듯했다.

1악장(매우 느리게-빠르게, 지나치지 않게), 2악장(빠르게, 우아하게), 3악장(빠르게, 매우 활기차게), 4악장(매우 느리게, 슬프게)이 차이콥스키의 악보상의 악장 구분이라면, 서진은 ‘화가 난 악장’ ‘포근한 악장’ ‘암울한 악장’ ‘가여운 악장’ ‘장엄한 악장’ ‘궁색한 악장’ 등으로 나누어 곡 하나가 지닌 오만가지의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하다 보니 하나의 악장에서도 프레이즈와 흐름의 대비·대조가 명징하다. 차이콥스키 하면 떠오르는 생각과 감성을 ‘감성의 선(線)’으로 연이어 엮기보다 ‘분절의 미학’을 보여준다. 한 악장에서도 다면성과 입체성을 끌어올린다. 그런 그가 리허설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모르겠으나 단원들도 이러한 흐름에 능숙하게 따라오는 듯했다.

그의 지휘를 보면서 서진과 부천필의 다음 궁합이 이뤄진다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핀란드의 작곡가는 ‘근엄한 변덕’을 교향곡마다 녹여 넣었다. 선율의 표정이 다르고, 화음의 육질이 제각각이다. 특정한 선율선으로 이러한 여러 조각들을 꿰기보다 각 표정을 잘 나눠 요리하는 지휘자가 시벨리우스 교향곡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망의 4악장이 끝났다. “교향곡을 지휘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어떤 교향곡은 3악장까지 잘 진행되다가 4악장에서 1~3악장의 모티프들을 반복하다 끝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차이콥스키의 ‘비창’의 4악장은 이전 것들을 끌어오기보다 새로운 교향곡을 쓰듯 작곡한 것 같습니다. 이 곡이 지닌 위대함이자 뒷심 강한 차이콥스키만의 매력이죠.”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빠르고 활기찬 3악장이 ‘여름’으로, 매우 느리고 슬픈 4악장이 ‘가을’로 다가왔다. 이제는 우울한 코로나 시대이다. 활기찬 3악장은 우리가 흘려보낸 일상 같다. 그리고 4악장은 지금의 우울한 현실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서진과 부천필은 ‘비창’의 4악장으로 10월의 끄트머리를 물들였다.

3년 만에 부천필과 조우한 서진은 ‘정리를 잘하는 지휘자’ 같다. 카겔의 ‘아인 브리프’에서는 음악과 극의 흐름을 보기 좋게 잘 나누었다.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에선 첼로(여기서 첼로의 ‘로’를, 길을 뜻하는 ‘로(路)’로 쓰고 싶다)와 악단의 길을 잘 정리하며 교감의 장을 만들었다. ‘비창’ 교향곡에선 악장과 악장을 나누며, 경계의 표정을 드러내었다.

부천필의 다음 공연인 제266회 정기연주회(11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는 ‘말러, 대지의 노래’이다.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대지의 노래’가 오른다. 지휘는 최수열이 맡았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월간객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