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66회 정기연주회 - 말러, 대지의 노래 (글_정이은)

  • 작성일2020-12-10
  • 조회수647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66회 정기연주회 '말러, 대지의 노래'
(2020. 11. 27. 금.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올해 정말 많은 이들이 지긋지긋하게 들었을 법한 단어, ‘코로나’와 ‘팬데믹’. 지난 11월 27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부천필의 266회 정기연주회가 열리던 날, 확진자의 수는 연일 500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연주회에 참석한 모든 관객들은 아마도 그들이 팬데믹의 한가운데에서 말러를 듣는다는 것을, 그것도 말러의 다른 곡이 아닌, 그가 남긴 삶과의 이별의 노래를 듣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기묘한 경험이었다. 전염병이 세 번째 큰 고비를 맞이하고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갉아먹는 동안, ‘공동체적 듣기’를 기반으로 한 우리의 콘서트홀 문화는 사실 휘청대고 있었다. 수많은 공연들이 기획되었다가 취소되었다. 그것은 공연문화의 생태계를 뿌리부터 흔드는 일이 었다. 팬데믹의 광풍 앞에 선 ‘공연문화’라는 위태롭고 흔들리는 촛불과, 죽음 앞에 선 인간 말러의 마지막 노래는 그렇게 묘한 합을 이뤄내고 있었다. 



부천필과 말러

부천필의 말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번 ‘대지의 노래’ 공연은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놓칠 수 없는 공연임에 틀림없었다. 올해 초 부천필이 말러의 교향곡 9번이 담긴 실황 연주 음반으로 한국의 말러 음악 연주사에 큰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천필이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9년이었다. 신생 오케스트라로서 부천필이 한국의 콘서트홀에 모습을 드러낸 지 불과 10년이 조금 넘어 시작한 일이었다. 젊은 오케스트라의 패기 넘치는 기획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유럽과 북미의 오케스트라들이 아주 오랫동안 말러를 연주하는 전통을 쌓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말러는 그다지 오래된 현상이 아니다. 1911년 말러가 죽은 이후, 그는 한동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던 중, 말러 음악이 새롭게 조명받게 된 것은 클래식의 탄생지 유럽이 아닌, 2차 대전 이후 새로운 음악 중심지로 떠오른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말러의 제자이자 명지휘자 브루노 발터, 그리고 발터의 대타 지휘로 뉴욕필의 포디엄에 올라 일약 스타덤에 오른 레너드 번스타인 덕분이었다. 

발터와 번스타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말러는 연주회장의 고정 레퍼토리로 안착하기 시작했다. 말러 음악에 대한 이들의 헌신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였다는 사실은 서양에서도 말러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오래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리고 20세기 말 한국에도 소위 ‘말러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열풍의 핵심에는 부천필의 말러 전곡 시리즈가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 ‘부천필의 말러’는 역사성을 지닌 브랜드가 되어가는 기점에 서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말러, 죽음, 그리고 노래

이번 연주회는 ‘대지의 노래’로 메인으로 하고, 전반부에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배치하는 구성으로 기획되었다. 오롯이 말러의 음악으로만 구성되었고, 두 작품 모두 ‘죽음’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날 참석한 청중들은 말러와 죽음, 그리고 오늘날 팬데믹이 만든 사회문화적 상황이 이 음악에 부여하는 의미들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프로그램의 두 작품 모두 성악이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 또한 말러의 교향곡에 깊게 새겨져 있는 본유적 ‘노래성’, 그리고 그 음악에 담긴 예술가의 심연을 오롯이 탐험할 수 있는 선곡이라는 점에서 이번 기획은 말러의 후기 음악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었다. 말러의 후기 음악을 목소리를 통해 조형해 내는 일은 메조소프라노 이아경과 테너 김재형에게 주어졌다. 이름만으로도 신뢰감을 주는 이들 두 성악가는 이 날 공연의 성공을 이끈 중요한 두 축이었다. 

교향곡 9번만큼이나, ‘대지의 노래’는 19세기 후기 낭만주의의 거대함과 탐미적인 세계를 벗어나는 작품이다. ‘대지의 노래’가 접속하고 있는 세계는 역사적 시간을 초월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베토벤의 후기 작품이 그러했듯, 후기의 말러 역시 당대의 예술적 흐름으로부터 벗어나 내면으로 침잠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연주회에 지휘자 최수열을 포디엄에 초대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는 현대 음악에 능한 지휘자이기 때문이다. 말년의 말러에 깊이 내재된 현대성을 끌어내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악가의 노래가 주도하는 것 같은 ‘대지의 노래’ 연주에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최수열이 이끄는 부천필은 그런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하면서도 디테일이 명징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메조소프라노 이아경과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이날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의 어깨는 상당히 무거웠을 것이다.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30분의 흐름을 긴장감있게 유지하는 것도 큰 도전이었지만, 전반부의 연가곡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오롯이 그의 무대였기 때문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아경의 행보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여러 오케스트라들이 이아경을 앞다투어 솔리스트로 초대하고 있을 만큼, 그는 최근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솔리스트다. 근래의 무대들에서 이아경의 소리는 정점에 올라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안정적인 호흡, 정확한 가사 전달, 다채로운 표현, 무엇보다도 말러의 오케스트라마저 뚫고 나오는 그의 파워는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래머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모든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이아경은 지난 해 부천필의 말러 3번 연주에도 알토 솔로를 노래한 바 있다. 당시 이아경은 교향곡에 흐르는 시간을 초월한 듯 등장하여, 니체의 텍스트를 나지막히 읊조리는 예언자적 시인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었다(2019년 5월 17일 제248회 정기연주회).

이아경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고유의 풍미가 있었다. 이아경은 반짝이는 고음에서 묵직한 저음에 이르기까지 슬픔이 지닌 다채로운 얼굴을 그려냈다. 아이를 잃고 동요하는 부모의 마음은 1곡, ‘이제 태양은 저토록 찬란하게 떠오르려 하네’에서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긴밀한 호흡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되었다. 최수열이 지휘하는 부천필은 매우 조심스럽게 성악가의 흐름에 맞춰갔다. 최수열의 노력은 오케스트라와 성악 사이에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는 실내악적인 대화가 선명히 드러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아경이 표현하는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은 때로는 덤덤해서 더욱 슬픈 노래로 들리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 번째 곡, ‘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에서 이아경은 두터운 저음의 표현을 통해, 민요조의 노래에 담긴 자장가 같은 선율에 담긴 말러적 아이러니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마지막 곡, ‘이런 날씨에, 이렇게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에’서 슬픔을 넘어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결국 자신의 슬픔을 종교적인 믿음으로 승화시키는 아버지의 마음에 강렬한 표현적 대비를 주기도 했다. 



대지의 노래

이번 연주회의 타이틀이기도 했던 ‘대지의 노래’는 말러 후기 작품에서도 정점에 있는 곡이다. 말러는 스스로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말년의 대작, ‘대지의 노래’에서 그려지는 말러의 세계는 ‘죽음’이라는 인간 실존의 문제로 수렴된다. 이 작품에서 말러는 이전의 교향곡과는 다른 차원의 일상, 환희, 체념, 이별과 같은 내면의 문제를 탐험한다. 

말러의 후기작들을 듣는 청중들은 난해함과 어려움을 느낀다. 그의 이전 교향곡에서 뚜렷이 감지되던 탐미적인 아름다움의 순간들은 조각들로 부서진다. 말러의 삶 주변을 부유하다가 그의 교향곡 안으로 들어왔던 장례 행렬 음악 같이 삶의 공간을 채우는 소리들의 자리에는 이별과 체념이라는 내면의 노래로 채워진다. 이런 작품을 연주하는 것의 과제는 그러한 분절되고 조각난 세계를 명징한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제는 오롯이 지휘자에게 주어진다. 

이번 연주에서 해외 오페라계에서 알프레드 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테너 김재형 소리는 유명한 말러의 권주가의 첫 소리부터 오케스트라의 팡파르를 뚫고 나올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가 노래한 1, 3, 5악장은 모두 ‘술’과 관련되어 있다. 고통과 절망, 그리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들을 술에 취해 바라보는 듯한 이 악장들에서 음악은 감정의 극단을 오고 간다. 김재형은 극단을 오고가는 음악에 드라마틱한 표현을 더했고 음악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끌고 나갔다. 

이아경이 부른 노래들이 가진 결은 김재형이 부른 홀수 악장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에 맞춰 그녀의 표현은 한층 절제되어 있었고, 좋은 결을 가진 소리로 노래의 내면으로 끌어냈다. 특히 30분에 달하는 마지막 악장은 압권이었다. 아스라이 사라지는 유명한 마지막 프레이즈, “영원히”(ewig)가 이아경의 소리를 통해 들으면서 관객들은 말러가 마련한 고별의 장엄한 전례에 오롯이 동참할 수 있었다. 

최수열의 지휘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말러의 복잡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명징하게 들리게 했고, 부천필은 집중도 높은 연주로 그에 요청에 응답했다. 이번 연주를 통해 부천필은 다시 한번 말러의 후기 음악이 가진 심원한 세계를 잘 다듬어진 소리로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말러를 향한 부천필의 오랜 노력은 그렇게 또 한 번의 멋진 결실로 맺어졌다. 


글 정이은(음악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