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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리뷰]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71회 정기연주회 - 베스트 클래식 시리즈 '슬라브의 낭만' (글_송현민)

  • 작성일2021-03-29
  • 조회수572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71회 정기연주회 - 베스트 클래식 시리즈 '슬라브의 낭만'

(2021. 03. 12. 금. 오후 8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271회 정기연주회
3월이니 봄이었고, 봄이었으니 낭만의 음악이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부천필)와의 첫 만남을 회상해달라고 하니 “12년만이다”라고 한다. 피아니스트 박종해는 더블린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한 2009년에 부천 필과 첫 만남을 가졌다. 최연소 2위와 최우수협주곡 연주특별상, 모차르트 특별상을 수상했던 그는 악단과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였다.

“더블린 콩쿠르 입상(2009) 후에 한국에서 선보인 오케스트라와의 큰 협연은 부천필이 첫 시작이었어요.”

당시 기사들을 찾아보니 세계에 이름을 알린 신예의 신호탄에는 ‘부천필 협연’이라는 프로필이 따라다닌다.


 
12년 만에 재회한 피아니스트와의 라흐마니노프(피아노 협주곡 제2번)

지난 3월 12일, 부천필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의 지휘로 제271회 정기연주회를 선보였다(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슬라브의 낭만’이라는 공연명이 붙은 이 날의 무대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선보인 시간. 동유럽 주요 민족인 슬라브의 기질로 음악사를 완성한 드보르자크의 대표작 교향곡 8번, 피아노를 통해 낭만주의의 최고조를 이룬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함께 한 시간이었다. 두 곡이 나란히 1부와 2부를 장식했다.
공연의 막이 오르고 무대로 나온 박종해는 협주곡의 서두를 피아노 독주로 연주했다. 관현악이 첫 문을 여는 다른 협주곡과 달리 이 곡은 협연자의 독주로 시작해 선율과 흐름의 살이 붙는 구조다. 따라서 지휘자의 지휘봉이 아닌 피아니스트의 건반으로부터 박자와 속도의 구조물이 지어진다. 흐름의 뼈대를 잡는 박종해에게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1악장에서 박종해가 정한 속도와 코바체프가 정한 속도는 다소 이질적이었다. 그렇다고 귀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청년의 건반과 노장의 지휘봉은 그렇게 서로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2악장에서는 그 합의 밀착도가 높아졌다.
3월이니, 봄이렷다. 봄날에 듣는 라흐마니노프의 이 곡은 의미 부여를 한없이 할 수 있는 곡이다. 공연 후 만난 박종해도 “이 곡이 봄에 어울리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2악장과 3악장 순으로 쓴 곡입니다. 그러고 나서 라흐마니노프는 이듬해(1901년) 봄에 1악장을 완성했습니다. 곡의 성공으로 인해 작곡가는 인생의 봄이 왔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러모로 감개무량했을 거에요.”

1900년 여름, 라흐마니노프는 실패한 작곡가로 이 곡을 썼다. 1897년 초연된 교향곡 1번은 실패의 대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이 곡의 2악장을 먼저 쓰고, 3악장을 썼다. 완성과 초연이 된 해는 1901년이니, 어떻게 보면 부천필은 이 곡의 ‘초연 120주년’을 축하한 셈이다.
우울한 침잠에서 승리의 찬양으로 진행되는 협주곡은, 교향곡의 실패와 우울증에서 벗어나 활기를 찾아가는 작곡가 심리의 반영이 틀림없다. 박종해는 악상을 비교적 자유롭게 취급하여 환상곡풍의 클라이맥스로 이어가고 차분하게 아름다운 코다로 2악장을 마무리했다.
3악장, 박종해는 강철 같은 타건으로 어수선한 도입부를 정리해나간다. 차곡차곡 힘을 쌓아갔고, 마지막 C장조로 거세게 진격하여 이 곡의 주요 조성인 C단조의 모든 흔적을 날려버린다. 개인적으로 이런 연주가 좋다. C단조로 태어난, 그래서 기조에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쓸쓸한 면이 깔려 있지만, 때로는 곡이 지닌 원래의 성격을 뒤엎는 젊은 피아니스트의 연주. 박종해의 연주가 늘 기대되는 이유다. 원곡의 중력에 사로 잡히지 않고 자신만의 해석을 보여준다는 짱짱함이다.

 

교향곡으로 태어났지만, 오페라처럼 노래한 드보르자크(교향곡 제8번)

봄날에 듣는 드보르자크의 음악은 생명의 음악이다. 어두운 D단조의 조성으로 되었지만 힘이 넘치는 교향곡 7번과 달리, 또 고국에 대한 향수로 그린 교향곡 9번 ‘신세계’와 달리 이번 무대에 오른 교향곡 8번은 생명의 박동수가 넘쳐 흐르는 곡이다.
1부에서 힘을 잔뜩 뺀 노장의 지휘자는 살짝 지쳐 있는 듯했지만, 곡이 시작되니 원기를 되찾는다. 입으로 따라부르라면 그 어떤 교향곡보다 따라 부르기 쉽고, 혹은 따라 부르고 싶은 인상적인 선율이 많은 교향곡 8번을 코바체프는 마치 오페라처럼 요리해낸다. 예술 인생의 절반 이상을 오페라와 함께 해온 지휘자가 들려주는 교향곡 해석의 묘미다.
특히 부분과 부분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따라서 이 곡이 단순히 화음과 화성의 구조로만 이뤄진 ‘합의 음향물’임을 넘어, 드보르자크가 애용한 ‘민속 선율과 노래들의 조각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휘와 해석이었다. 그는 그렇게 부분의 미학을 강조했고, 주제와 에피소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부천필의 금관과 목관 파트도 지휘자의 이러한 의도를 잘 파악하여 화력을 지원했다. 1악장에서 비올라와 첼로가 연주하는 리드미컬하고 쾌활한 주제로 인상적이었지만, 활기에 박차를 가하는 클라리넷의 2중주, 2악장에서 민속적인 선율을 책임지는 목관악기군. 그리고 4악장의 서주를 장식하는 트럼펫의 화려한 팡파르 등은 부천 필의 화력이 어디서 나온지를 명확히 보여준 대목들이다. 지난번 서진의 지휘로 선보인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비창)에서도 관악기들의 진영은 흔들림 없었다.
현재 부천필은 지휘자가 공석이다. 따라서 그들의 지휘대에는 매번 새로운 얼굴의 지휘자들이 오른다. 그간 서진, 정치용, 코바체프가 거쳤다. 그러면서 그간 단일한 성격과 음향으로 일관해온 시간에서 벗어나, 악단이 숨겨온 다양한 표정과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4월 3일 교향악축제에는 장윤성이 지휘봉을 잡고, 에스더 유의 협연으로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인다. 국내에서 실연으로 접하기 힘든 곡이다(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제272회 정기연주회는 정치용의 지휘로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을 선보인다. 김재형(테너)이 협연할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그간 소프라노가 협연하던 것과 달리 테너의 목소리로 듣는 국내 초연의 시간이다.
이날 코바체프와 부천필은 앙코르로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오네긴’ 중 폴로네이즈를 선보였다. 지휘자의 시그니처가 된 앙코르곡이다. 연주회의 ‘끝’에 연주된 곡이었지만, 부천필이 선보일 올해 행보의 ‘힘찬 시작’을 알리는 곡 같았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