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부천필] 제339회 정기연주회 'The Beginning' 프로그램 노트
- 작성일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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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339회 정기연주회
The Beginning
프로그램 노트
외트뵈시, 말하는 드럼
P. Eötvös, Speaking Drums – Four Poems for Percussion Solo and Orchestra
헝가리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 페테르 외트뵈시(Péter Eötvös, 1944–2024)가 2012년에 작곡하여 2013년에 발표한 타악기 협주곡 《말하는 드럼(Speaking Drums)》은 전통적인 협주곡의 개념을 한 단계 뛰어넘는다. 이 작품은 소리와 언어, 신체적 움직임, 그리고 관현악적 요소와 극적 표현을 결합한 21세기 현대 음악의 대표작이다.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과 죄르지 리게티(György Ligeti)로 대표되는 중부 유럽 현대 음악의 흐름 속에서 성장한 외트뵈시는 단순한 음향 실험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목소리와 신체 몸짓, 극적인 표현 방식을 음악 구조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 콜린 커리(Colin Currie)를 위해 작곡된 이 작품은 독주자에게 뛰어난 연주 기교뿐 아니라 연극적 움직임과 음성 표현까지 요구하며, 타악기를 단순한 리듬 악기가 아닌 표현을 위한 소통의 주체로 확장한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서아프리카 문화권의 전통 악기인 ‘토킹 드럼(Talking Drum)’을 연상시키지만, 실제 음악적 출발점은 산도르 웨오레스(Sándor Weöres)의 시와 언어의 리듬적 구조에 있다.
토킹 드럼은 서아프리카 전통 사회에서 음높이와 조의 변화를 통해 인간 언어의 억양을 모방하여 메시지를 전달했던 독특한 악기이다. 외트뵈시는 이러한 원리를 현대 관현악 기법으로 재해석하며, "음악은 어디까지 언어가 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작품 속 무대 위의 독주자는 단순히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가 아니라, 온몸으로 텍스트를 표현하는 화자이자 퍼포머가 된다. 솔리스트는 무대 위에 공간적으로 배치된 여러 타악기 세트를 오가며 연주하고, 헝가리 시인 산도르 웨오레스의 넌센스 시와 음성적 텍스트를 외치거나 속삭인다.
이때 언어는 명확한 의미 전달 수단이라기보다 발음, 억양, 리듬, 음색 자체가 음악적 요소로 변형되는 재료로 쓰인다. 《말하는 드럼》은 타악기의 음색적 가능성을 극대화하여 전통적인 악음과 비악음의 경계를 확장하며 모든 소리를 음악적 표현 재료로 활용한다.
오케스트라 역시 전통적인 협주곡처럼 독주자를 단순히 지원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때로는 독주자의 소리를 메아리처럼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대한 음향적 힘으로 대립하며 또 하나의 극적 인물처럼 기능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리듬 구조와 다채로운 악기 조합 속에서 이 작품은 치밀한 구성과 즉흥적인 생동감을 동시에 발산한다.
외트뵈시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오래전부터 소리와 리듬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소통해 왔다는 사실을 현대적인 음악 언어로 되살려냈다. 음악사적으로 이 작품은 전통적인 협주곡의 영역을 확장하며, 악기와 인간, 음악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탐구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말하는 드럼》은 세 개의 악장 안에서 부제인 '네 편의 시(Four Poems)'의 텍스트와 연주자의 움직임, 악기 배치, 음향적 변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극적 흐름을 만들어간다. 각 악장은 시의 언어적 리듬과 음향적 상상력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며, 마지막 악장에서는 여러 시적 요소가 하나의 거대한 음악적 서사로 통합된다.
제1악장 : Dance Song / Tanzlied
첫 번째 악장은 웨오레스의 「Dance Song」을 바탕으로 강렬한 타악기 리듬과 인간의 목소리가 결합하며 작품 전체의 원초적인 에너지를 제시한다. 스네어 드럼과 여러 타악기군의 연주 속에서 파편화된 언어적 음소들이 타악기 리듬으로 번역된다. 짧은 음형과 급격한 음색 변화는 마치 언어가 탄생하기 이전의 원초적인 의사소통을 연상시키며, 선율의 아름다움보다 소리가 가진 운동성과 에너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독주자는 선율을 연주하는 전통적인 협주곡의 주인공이 아니라, 다양한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의 역할을 맡는다.
제2악장 : Nonsense Songs
두 번째 악장은 웨오레스의 두 편의 넌센스 시를 바탕으로 언어가 지닌 음성적 리듬과 유희성을 더욱 깊이 탐구한다. 의미보다 음향과 리듬을 중시하는 음성적 텍스트가 등장하며 유희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드블록과 톰톰 등 다양한 악기가 동원되며, 연주자의 음성과 악기 소리가 서로를 모방하는 고도의 구조를 보여준다. 작은 울림과 금속성 잔향을 통해 소리가 사라지는 미묘한 순간까지 음악의 일부로 포착하며 침묵 속의 섬세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외트뵈시는 이 부분에서 소리와 침묵, 인간의 목소리와 악기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타악기가 지닌 폭넓은 표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음악은 음과 리듬을 서로 주고받는 호케투스적(Hocket/Hoquetus) 기법이 두드러진다. 여기서는 더욱 복잡한 리듬 구조와 확장된 음향이 등장하며, 독주자의 신체적 움직임 자체가 음악적 표현의 일부가 된다. 타악기 연주는 단순한 박자의 제시가 아니라 하나의 극적 행위로 변화하고, 관현악은 다양한 색채와 밀도 높은 음향으로 독주자의 표현을 확장한다. 인간의 목소리와 악기의 울림은 서로 모방하고 충돌하면서 점차 하나의 거대한 음향적 흐름을 형성한다.
제3악장 : Passacaglia
마지막 부분은 작품 전체에 축적된 에너지가 집약되어 폭발하는 지점이다. 저음역의 반복되는 구조 위에 연극배우처럼 행동하는 역동적인 연주자의 움직임이 결합한다.
복잡한 박자 변화 속에서 인간의 목소리와 타악기의 직접적인 에너지는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향과 대결을 넘어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로 합쳐진다. 결국 인간의 음성, 타악기의 다층적인 음향, 관현악의 색채가 결합하여, 작품은 하나의 거대한 '말하는 악기'처럼 압도적인 표현 세계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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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
G. Mahler, Symphony No. 1 in D Major ‘Titan’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제1번은 19세기 낭만주의 교향곡의 유산을 계승하는 동시에 20세기 새로운 교향곡의 가능성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889년 11월 20일 부다페스트 헝가리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말러 자신의 지휘로 세상에 첫선을 보인 이 곡은, 훗날 그가 “교향곡은 하나의 세계와 같아서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한다”고 밝혔던 예술관을 예견하는 첫 교향곡이다. 동시에 이후 전개될 그의 거대한 음악적 여정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1893년 함부르크와 1894년 바이마르 공연 때 이 작품에는 독일 문호 장 파울(Jean Paul)의 소설 제목에서 유래한 ‘거인(Titan)’이라는 표제가 붙기도 했으나, 말러는 청중이 음악을 특정 서사나 문학적 틀 안에 가두어 감상하는 것을 경계하여 이 표제를 자진 철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내면에는 청춘의 눈부신 환희와 실연이 남긴 깊은 상처, 인간 실존에 대한 고뇌와 운명에 맞서는 투쟁,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내는 강인한 의지가 거대한 관현악 사운드를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이 작품은 음악사적으로 말러 특유의 ‘가곡과 교향곡의 융합’이라는 독창적인 작곡 기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말러는 자신의 초기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의 선율과 정서를 교향곡 내부로 가져와, 개인적인 체험과 감정을 인간 보편의 거대한 이야기로 확장시켰다. 특히 1악장과 3악장에서는 가곡에서 비롯된 선율적 요소가 교향곡 특유의 논리적 발전을 이루며, 노래하는 선율과 웅장한 관현악 구조가 하나로 결합하는 말러만의 세계를 증명한다.
더불어 말러는 정통 클래식의 규범적인 음악 언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대자연의 소리, 군대의 나팔 신호, 민속 무곡, 동유럽 유대 음악 전통인 클레즈머(Klezmer)의 독특한 색채, 전래 동요와 장송 행진곡 등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소리 들을 작품 안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한 효과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에 공존하는 아름다움과 불안, 순수함과 냉소적 풍자, 숭고함과 세속성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말러 특유의 입체적인 세계관을 형성하는 핵심 기반이 된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이 고난과 투쟁을 거쳐 영웅적 승리에 도달하는 극적 서사를 발전시켜 왔다면, 말러는 여기에 한층 복잡하고 현대적인 인간 심리의 다면성을 더했다. 그의 음악에서는 승리 속에도 불안의 그림자가 남고, 비극 속에서도 희망의 가능성이 교차한다. 이러한 양면성은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의 위대한 절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 내면의 모순과 복잡성을 탐구하는 20세기 현대 교향곡의 새로운 길을 예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말러 교향곡 제1번은 청년 작곡가의 화려한 등장을 알린 신호탄인 동시에, 이후 그가 남긴 교향곡 전편을 관통하는 핵심 열쇠이다. 자연과 인간, 현실과 이상, 삶과 죽음, 기쁨과 고통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하고 융합되는 과정을 통해, 교향곡이라는 장르가 단순한 음악적 형식을 넘어 인간 존재의 총체를 담아내는 거대한 세계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제1악장: Langsam. Schleppend (느리게, 끌듯이)
말러 교향곡 제1번의 도입부는 작곡가가 악보에 명시한 ‘자연의 소리처럼(Wie ein Naturlaut)’이라는 지시어 그대로,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대자연의 신비롭고 아득한 분위기로 문을 연다. 현악기가 높은 음역에서 하모닉스 효과로 길게 지속하는 A(라)음은 마치 끝없이 펼쳐진 우주적 공간감을 만들어내며, 기존 교향곡의 관습적인 도입부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독창적인 음향 공간을 제시한다.
이 신비로운 서주를 지나면 음악은 점차 밝고 생동감 있는 분위기로 전환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주요 선율은 말러의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제2곡 〈오늘 아침 들판을 걸었네(Ging heut’ Morgen übers Feld)〉에서 가져온 것이다. 자연 속을 거니는 젊은이의 기쁨과 설렘을 담은 이 선율은 교향곡 안에서 더욱 확장되어 젊음과 희망, 삶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다만, 밝은 선율 사이로 문득 나타나는 미묘한 화성 변화와 어두운 음색은 앞으로 펼쳐질 갈등과 고뇌를 암시한다. 환희와 불안, 순수함과 어둠의 그림자가 공존하는 이러한 양면성은 말러 음악의 핵심적인 특징이며, 제1악장은 그의 교향곡 세계가 추구하는 ‘인간 삶 전체의 표현’이라는 이상을 훌륭하게 구현한다.
제2악장: Kräftig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힘차게 움직이되, 너무 빠르지 않게)
전통적인 교향곡 구조에서 스케르초의 역할을 수행하는 악장으로, 오스트리아와 독일 남부의 소박한 민속 무곡인 렌틀러(Ländler)의 리듬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말러는 궁정에서 발전한 우아한 춤곡 대신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 이어져 온 민속적 움직임을 교향곡에 과감히 도입하여,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세계를 펼쳐 보인다.
악장은 저음 현악기군이 제시하는 묵직하고 힘찬 리듬으로 시작된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강한 박자감, 거칠지만 활력 있는 선율은 대지에 뿌리를 둔 강렬한 에너지와 삶의 생명력을 표현한다. 여기에 관현악 전체가 점차 가세하면서 음악은 더욱 풍성하고 역동적인 춤의 장면으로 확장된다.
중간부(Trio)에 이르면 음악은 한층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변화한다. 현악기와 호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우아한 선율은 렌틀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빈 왈츠의 세련된 정서를 떠올리게 하며, 앞부분의 강렬한 움직임과 매력적인 대조를 이룬다.
제3악장: Feierlich und gemessen, ohne zu schleppen (엄숙하고 침착하게, 처지지 않게)
서양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장송 행진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악장이다. 일반적인 장송 음악이 죽음의 비극성과 엄숙함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말러는 대중에게 익숙한 선율을 낯설게 변형하고 서로 이질적인 음악적 요소들을 결합하여 삶과 죽음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보여준다.
악장은 팀파니의 조용하고 규칙적인 타격 위에,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육중한 저음 악기인 콘트라베이스의 쓸쓸한 독주로 소박하게 시작된다. 육중한 악기가 높은 음역대에서 가냘프게 연주하는 이 선율은 프랑스의 전래 동요인 《프레르 자크(Frère Jacques, 독일어권에서는 Bruder Martin으로 알려진 노래)》를 단조로 변형한 것으로, 본래 밝고 순수했던 노래가 어둡고 쓸쓸한 장송 행진곡으로 바뀌면서 낯선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동유럽 유대 음악 전통인 클레즈머(Klezmer)를 연상시키는 선율과 리듬이 등장한다. 통속적이고 해학적인 분위기의 이 음악은 앞선 장송 행진의 분위기와 강한 대비를 이루며, 마치 슬픔을 냉소적으로 비웃는 듯한 풍자적 효과를 낸다. 이러한 의도적인 음악적 충돌은 비극과 희극이 동시에 존재하는 인간 현실을 보여주는 말러 특유의 표현 방식이다.
중간부에서는 말러의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마지막 곡 〈내 사랑의 푸른 두 눈(Die zwei blauen Augen von meinem Schatz)〉의 서정적인 선율이 흘러나오며, 앞선 냉소적인 분위기와 달리 상실과 체념, 그리고 조용한 위로의 감정을 전한다.
제4악장: Stürmisch bewegt (폭풍처럼 격렬하게)
마지막 악장은 앞선 악장들이 만들어 온 내면의 갈등과 불안을 한순간에 폭발시키듯 강렬하게 시작된다. 서두부터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심벌즈의 타격과 금관악기의 날카로운 외침, 격렬하게 움직이는 현악기의 흐름은 평온한 세계가 무너지고 거대한 운명의 투쟁이 시작되는 순간을 표현한다.
말러는 이 악장에서 서로 대립하는 음악적 요소들을 극적으로 충돌시킨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격렬한 전반부의 주제가 인간이 마주하는 고통과 운명의 힘을 상징한다면, 현악기군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넓고 서정적인 선율은 혼란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희망과 위로의 감정을 전달한다. 이 악장은 베토벤 이후 교향곡의 중요한 전통이 된 ‘고난에서 승리로(Per aspera ad astra)’ 향하는 극적 서사를 계승하면서도, 말러 특유의 복잡하고 거대한 심리적 여정으로 지평을 확장한다.
종결부에 이르면 앞선 악장들의 핵심적인 음악적 요소들이 다시 등장하며 작품 전체의 긴 여정을 하나로 연결한다. 말러는 종결부에서 호른 주자들에게 벨을 들어 올려(Schalltrichter auf)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실제 연주 관행에서는 호른 주자들이 일어서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마침내 긴 음악적 여정은 작품의 출발점이자 궁극적인 귀결점인 D장조의 찬란한 세계에 도달하며, 작품은 압도적이고 입체적인 관현악 음향 속에서 장대한 피날레를 완성한다.
글 부천시립예술단 사무국 팀장 박갑선